[한국뉴스타임=명기자] 최근 5년 새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병원 진료를 받은 소방공무원이 79% 증가했다. 약물 처방은 받지 않고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상담을 받은 소방공무원은 4배 가까이 늘었다. 이 사이 56명의 소방관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의뢰해 2016~2020년 소방청과 소속기관(중앙소방학교, 중앙119구조본부, 국립소방연구원), 시도소방본부 및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공무원들의 특정상병코드별 진료 인원을 분석했다.
소방공무원들의 마음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우울증(F32·F33), PTSD(F431), 보건일반상담(Z719) 등 3개 특정상병코드로 최근 5년간 병원을 찾은 인원을 추출했다. Z코드는 정신과에서 약물 처방을 받지 않지 않고, 상담이나 건강관리 등 보건서비스를 받을 때 쓰는 코드다.
분석 결과 5년 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소방공무원은 2배 가까이 늘었다. 2016년 364명에서 2017년 415명, 2018년 509명, 2019년 658명, 2020년 650명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PTSD 증세로 병원을 찾은 소방공무원도 2016년 37명에서 2017년 43명, 2018년 49명, 2019년 53명, 2020년 67명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보건일반상담을 받은 소방공무원은 2016년 54명에서 2017년 136명으로 2배 이상 껑충 뛴 이후 지난해까지 계속 백여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우울증 환자는 △소방청 및 소속기관 5명(2016년)→12명(2020년) △서울 52명→74명 △부산 22명→35명 △대구 18명→26명 △인천 23명→42명 △광주 5명→10명 △대전 10명→15명 △울산 7명→9명 △세종 4명→17명 △경기 67명→127명 △강원 21명→42명 △충북 18명→32명 △충남 25명→28명 △전북 15명→26명 △전남 14명→30명 △경북 22명→43명 △경남 30명→69명 △제주 6명→8명 △창원 0명→5명 등으로 늘었다.
PTSD 환자는 △소방청 및 소속기관 0명(2016년)→1명(2020년) △서울 9명→9명 △부산 1명→1명 △대구 0명→1명 △인천 0명→4명 △광주 0명→1명 △대전 0명→1명 △울산 0명→1명 △세종 0명→1명 △경기 11명→17명 △강원 2명→4명 △충북 0명→3명 △충남 4명→6명 △전북 0명→3명 △전남 3명→7명 △경북 2명→3명 △경남 4명→4명 △제주 0명→0명 △창원 1명→0명 등으로 집계됐다.
정신과 상담 환자는 △소방청 및 소속기관 2명(2016년)→1명(2020년) △서울 8명→14명 △부산 1명→24명 △대구 2명→4명 △인천 2명→6명 △광주 1명→3명 △대전 1명→5명 △울산 1명→0명 △세종 0명→0명 △경기 7명→67명 △강원 5명→6명 △충북 4명→7명 △충남 2명→8명 △전북 3명→7명 △전남 2명→9명 △경북 5명→11명 △경남 7명→11명 △제주 0명→2명 △창원 1명→1명 등을 보였다.
우울증과 PTSD, 보건일반상담 등 모든 진료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집계된 곳은 경기지역이다.
2016년 우울증 진료를 받은 경기지역 소방공무원은 67명에서 2017년 64명으로 다소 줄었다가, 2018년 96명, 2019년 127명, 2020년 127명으로 부쩍 늘었다. 같은 기간 PTSD 진료 인원도 11명→15명→17명→17명→17명으로 타 시도에 비해 가장 많은 수를 보였다.
이러한 수치는 경기도가 전체 시도 가운데 매년 119구조·구급활동, 119 생활안전활동이 가장 많고, 화재발생 건수도 타 시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 2020년 기준 전국에서 발생한 3만8천659건의 화재 중 8천920건(23%)이 경기도에서 일어났다. 119구조활동(19만8천885건)과 구급활동(63만6천133건), 119생활안전활동(9만6천122건)에서도 경기지역 소방본부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출동 건수를 보였다.
소방청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서 우울증‧PTSD 소방관 훨씬 많은데 실제 진료로 이어지지 않은 ‘숨겨진 환자’ 상당수
주목할만한 점은 이은주 의원실이 특정상병코드별 진료 인원을 분석한 결과와 소방청이 실시한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 간 간극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소방청이 제출한 ‘2016~2020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년간 우울증과 PTSD를 호소한 소방공무원이 각각 1만527명, 1만744명이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 진료로 이어진 경우는 5년간 우울증 2천596명, PTSD 249명으로 그 수가 매우 적다. 우울증이 있어도 병원을 찾지 않는 소방공무원이 75%가 넘고, PTSD 증세가 있어도 진료를 받지 않는 소방공무원이 98%에 육박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증상이 있어도 병원을 찾지 않는 ‘숨겨진 환자’가 많다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지점이다.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건강이 취약해지는 동안 자살을 선택한 이들도 꾸준히 늘어났다.
소방청이 제출한 ‘자살 소방공무원 현황’에 따르면 2016년 6명, 2017년 15명, 2018년 9명, 2019년 14명, 2020년 12명의 소방공무원이 세상을 등졌다. 올해 들어서는 불과 9개월 만에 12명이 자살했다.
소방청이 추정한 자살 원인은 신변비관이 18명으로 가장 많았고, 가정불화(14명), 직무스트레스(6명), 우울증(5명), 채무(5명), PTSD(1명) 순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도 19명이나 됐다.
한편 소방청은 소방공무원들의 마음건강을 위해 다양한 예방사업과 치료사업을 하고 있다.
2012년부터 찾아가는 상담실,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정신건강 상담·검사·진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은주 의원은 “충격적인 현장 노출 등 각종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소방공무원들은 우울증이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되기 쉽지만, 아직까지 ‘정신력이 약하다’는 식의 낙인효과로 인해 병을 드러내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은 채 홀로 고통을 견디는 소방공무원들이 많다”며 “소방청도 이들이 두려움이 없이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소방공무원들의 마음건강 증진을 위해 보다 노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