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T한국뉴스타임] 서울시는 국내에는 기념비 하나 남지 않은 독립유공자 ‘이범진, 이위종 열사’ 부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당시 이범진의 집터로 알려진 현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에 기념 표석을 설치했다.
이범진 열사는 주러시아 초대 공사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애를 쓰다가 한일강제병합에 항거하여 자결했고, 이위종 열사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러시아에서 무장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범진, 이위종 독립유공자 부자는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는 등 업적을 인정받았으나,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순국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조차 국내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고종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이범진 열사의 무덤은 소련 당국의 묘지 정리로 멸실되었고, 이위종 열사는 시베리아에서 무장 투쟁 중 행방불명되어 이 부자의 유골은 현재까지 환국하지 못했다.
이범진 열사는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항일 의병단체의 무장 독립운동을 돕고, 비공식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국권 회복에 힘썼다. 그의 아들 이위종 또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특사로 파견되어 국외에 대한 독립을 호소하고, 연해주에서 무장 독립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공적이 크다.
1896년 주미 공사로 조선을 떠난 이범진 열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후, 외국에 주재하는 대한제국의 공사관을 폐쇄하고 모든 외교관 철수를 명령했음에도 계속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주재하며 대한제국의 주권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1910년까지 여권발급 등 공사 업무와 비공식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국권 회복에 주력하다 1911년 1월 26일, 고종황제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이위종은 1907년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특사로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독립을 국외에 호소했다. 이후 1908년 부친 이범진이 전달한 10,000루블을 가지고 연해주로 가서 항일 의병단체의 무장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시베리아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장 투쟁을 하던 도중 실종되었다.
서울시는 이처럼 독립운동의 공적이 크지만,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들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고, ‘우정사업본부’의 협조를 받아 이범진 열사의 집터였던 현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에 표석을 설치했다.
이범진 열사 순국 110주년이 되는 1월 26일 정오, 서울중앙우체국 광장에서 유족과 관계자들이 모여 표석 제막식과 추모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권순기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이번에 설치된 이범진 열사의 표석을 통해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멀리 타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이끌다가 순국하신 독립투사들을 기리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출처: 서울특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