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나라 말기 초(楚)나라의 군주로서, 한(漢)의 유방(劉邦)과 함께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룬 초한지의 항우는 진나라 관중을 점령함으로써 진나라를 멸망시킨다. 이에 반군 지휘관들은 항우를 가장 높은 자리에 추대한다.
이때 항우의 참모 한생이란 자가 “관중은 뛰어난 요충지이자 비옥한 곳입니다. 이곳을 근거로 하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성공하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비단옷을 입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한생은 “초나라 촌놈들은 원숭이에게 관을 씌운 꼴로 머리를 쓸 줄 모른다고 하더니 그 말이 과연 맞는 말이군.”라고 중얼거렸고 화가 난 항우는 참모 한생을 즉시 죽이고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고향으로 향하였고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외지에서 성공하여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사자성어가 금의환향(錦衣還鄕)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몇 해 전 서울에서 성공하신 고향 대선배에게 “퇴직하시면 고향을 위해서 그동안의 경험을 사용하시면 좋겠네요”라고 하자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
대선배는 “외지에서 나름 성공해도 고향에 내려가면 사람들은 아직도 어릴 적 철부지로만 대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서울에서 성공했다고 잘 난 척 하지 마” 또는 “니가 무조건 술 사”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가 ‘서울대’ 출신 또는 ‘고시합격’ 등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덜 자고 덜 놀며 희생한 과정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한 과정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과정을 무시하며 과거의 어릴 적 모습에만 연연하며 무시하고 홀대한다면 어느 누가 고향으로 돌아오겠는가?
눈이 하나만 있는 나라에선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바보라는 말이 있다.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상식적인 사람을 무시하고 홀대한다는 뜻이다.
지역에 와서 지역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출산하여 20여 년을 살아온 한 외지인은 “언제 가평 사람이 되느냐”라고 내게 물었다.
이에 “죽을 때까지 안 돼”라고 답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혈연. 학연. 지연. 형동생으로 연결된 지역사회에서 외지인은 수년을 살아도 외지인이라는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역에서 태어나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여 서울에서 16여 년을 교육사업을 하였던 필자도 종종 외지인 취급을 받는다.
외지인이라고는 주말마다 놀러 내려오는 관광객이나 펜션 등의 사업을 위해 내려온 사업가나 정년퇴직한 귀촌귀향인이 대다수이다.
이들 대다수는 고학력에 비싼 차에 비싼 옷에 도시 사고방식으로 살다 보니 평생을 농촌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이질감에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그러나 정상에서만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 한 개 동 인구보다도 적은 가평군을 대한민국 중앙 정부 등의 위에서 본다면 특별대우 할 리는 만무하다.
6만 4천 가평군에 대기업의 최첨단 생산시설과 정부의 대규모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가평군은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인구소멸 농촌 지역이다.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는 좌정관천(坐井觀天)하는 견문이 좁음을 인정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성공한 출향인과 귀촌귀농인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영입하여야 한다.
성공한 이들의 정상에서 경험과 인맥으로 지역사회 발전 마중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새천에 치어를 방류한다고 냇가에 물고기가 많아지지는 않는다.
맑은 물을 보존하고 생태환경을 정화하여야만 물고기는 돌아온다.
나이를 앞세워 젊은이들을 경시하고 홀대하여 지역을 떠나게 하지 말고 아끼고 우대해야 한다.
경로사상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 편의 시설 확충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를 이어갈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고 학습 할 수 있는 교육 생활환경이 조성 된다면 젊은 세대의 가정이 떠 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부모가 도시로 출퇴근 하더라도 지역에서 살아 갈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수많은 판단 오류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로 인해 상처받고 고향을 등지고 귀농·귀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고민해야 한다.